교회사는 오직 참되고 지속성 있는 신앙만이 개인들, 가정, 교회의 신앙적 공동체성(corporeity)을 이룰 수 있고, 또 그것을 오래 후손들과 후세에 전승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참 교회만이 영원히 살아있고 그 기능을 언제까지나 하는 것이며, 인본적 거짓 신앙들은 일시적으로 유해하다가 곧 단절되고 만다.

 이 참된 신앙공동체의 형성을 위해 먼저 가정성경 처럼 우리의 후손들에게 전승할만한 참 신앙 전통을 우리부터 소유하고, 또 그것을 우리의 후손들에게 전승 해야 한다. 이런 신앙은 개혁주의 성경학과  그에 근거한 설교에 의해서만 발견되고 교육되고 유지된다. 무엇보다 앞서서 구속사적인 중심의 교리가 설교의 뼈대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칼빈의 설교가 명료하고 확고한 교리 뒤에 서있음은 누구나 수긍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교리 중심의 설교가 결과적으로는 후세의 견실한 개혁주의 교회의 모체가 될 수 있었던 참된 신자들을 많이 배출했으며, 칼빈의 이 사역은 사회적으로도 제네바와 스위스전체, 나아가서는 온 구라파의 문화발전과 사회개량의 큰 원동력 마저 되었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설교에서의 교리의 중요성을 구원하기보다는, 문화를 접목시키고 성령이라는 이름으로 신비만을 강조하고 성공적인 삶을 위한 복음이 아닌 철학적인 요소들을 가미하고, 무엇보다 기독교적 교리의 전통성을 무시하고 사회의 흐름에 따라 철새와 같은  비교리적인 설교들이 부흥이라는 이름으로  실제로 이뤄놓은 것은, 그 설교자들 자신이 바라던 물질적인 풍요는 이뤄 놓았는지는 모르지만 주님을 향한 잘못된 가르침으로 여전히 영적인 허전함과 혼돈과  퇴보 뿐이었던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의 이른바 급속히 성장한다는 대부분의 교회들 설교는 신비주의와 혼합주의 사상의 배경에서 행해지는 설교들에 대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극히 인본주의 적이고  주관주의에 기울여진  뿌리없는 가르침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확신이 아닌 오직 개인적인 자기만족과 신비경험 위주의 자아도취에서 일생을 허송하는 쭉정이 신자들로 배출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자녀들에게 전승하려는 신앙적인 유산은 ….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의 미래를 놓고 기도한다. 그러나 그 기도를 하나하나 검토해 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성공해서 부족함이 없고 건강해서 오래 사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자녀에 대한 최고이며 궁극적인 기도 일 것이다. 이런 단순히 복을 비는 것이 여러분이 잠자리에, 식사시간에, 그리고 골방에서 하는 기도라면 당신은 하나님을 모르는 어쩌면 구원과도 관계되어진 그릇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신앙 공동체인 나를 돌아보고 모든 주권을 주님께로 향하는, 글에서의 육하원칙이 모두 주님께로 향하듯 우리의 신앙이 참 신앙공동체의 전승으로 이어 질 때 우리는 주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칭찬받고 주님께서 예비한 나라를 상속받게 될 것이라  믿는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

    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5 : 13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