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활에서 좋은 일이 계속해서 나타나려면 우리는 성령에 의해 인도를 받아야 하고 성령에 의해 가르침을 받아야 하고 성령에 의해 쓰임을 받아야 한다.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날수 없다. 오늘날은 스룹바벨 시대와 같이 그런 일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4 :6)

 스룹바벨은 예루살렘에 유대인의 성전을 재건하려고 했으나 실망했다. 그를 돕는 사람은 거의 없었으며 원수들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그 계획이 성령의 능력으로 성공리에 끝날 것을 환상으로 확신시켜 주었다. 환상 속에서 그 선지자는 일곱 등잔이 있는 순금등잔대를 보았다. 모든 등잔이 타고 있었으니 감람나무에서 직접 금관을 통하여 흘러나리는 기름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F. B. 메이어씨는 말했다. “그 환상이 유대인에 관한 것을 의미함이 분명하다. 등잔대는 그들을 나타낸 것이고 많은 등잔과 주발같은 것이 조화를 이룬 것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완전하고 귀하게 생각하신 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들의 할 일은 세상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빛을 비추는 것이었다. 이 일을 마치는데 있어 그들을 돕기 위해서는 위로부터 금관을 통하여 오는 것이 있어야 했다. 그리고 두 감람나무는 제사자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을 나타낸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위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능력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었다. 이스라엘의 사명은 스스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깨달아졌다. 그들은 힘없고 무력하게 보였으나 살아있는 기름샘에서 나온 기름은 그들을 계속하여 준비시켰다.

 어두운 세상에 빛을 계속 비추기 위하여서 우리는 이러한 계속적인 성령의 공급이 필요하다.  

 옛날 이스라엘이 그랬듯이 오늘날 우리도 어떤 능력이나 힘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힘으로도 군대로도 능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성령으로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힘은 육체적이건 정신적이건 도덕적이든 간에 하나님의 목적을 완수하는데 결코 충분할 수 없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하나님을 효과적으로 섬길 수가 없으니 여호와 하나님은 그렇게 하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다. 하물며 “네가 내게 돌로 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20 :25)는 말씀처럼 주님은 우리의 땀을 원하시지 않으신다. 성령의 역사는 우리의 주권이 아니라 적대적인 의지, 0%의 내가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등잔대를 세우고 대롱에 연결된 등잔만을 바라보면 그 불이 영원하기를 기다리지는 않는가? 우리가 준비한 기름은 이제 매 마르고 없어지는데 하며 안타까워하지는 않는가?

 마르지 않는 기름의 원천인 올리브 나무처럼 우리의 뿌리를 주님께로 두어야 할 때이다. ‘천국은 아직도 영적인 축복의 선물로 꽉 차있다’고 앤드류 머레이는 말했다. 문 앞에서 주님은 마르지 않는 기름관을 연결하기 위해 기다리시는데 이제는 빗장으로 꽉 채워진 당신의 마음의 꾸러미를 내려놓고 문을 열어야 할 때이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3 :20)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 : 14)